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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마니아 빈살만?…하락장 12조 베팅한 왕실 금고 [딥다이브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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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한 화면을 탈출해 대형 극장 스크린으로 튀어나온 애니메이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전 세계적으로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북미에서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1조원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죠.

그런데 일루미네이션 엔터테인먼트와 닌텐도가 공동으로 제작한 영화 속 캐릭터가 쿠파와 싸우며 '톡톡' 코인을 터뜨릴 때마다 이득을 보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게임회사 닌텐도의 주요 주주이자 미국과 한국 등 전세계 기술, 게임, 서비스, 부동산 분야 큰손으로 활약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PIF, 그리고 이 펀드의 실질적인 주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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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재벌인 중동 국가들은 나라마다 수천억 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운용하고 있죠. 나라의 자산을 불리기 위해 해외 주식과 채권에 고루 베팅하도록 한 이들 펀드 가운데 사우디 국부펀드의 행보는 유난히 독특합니다.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아랍에미리트연합과 달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공개된 사우디 국부펀드의 투자 실력을 살짝 들여다봤습니다.

※ 전편보기 ☞
1) 바이든은 왜 입 다물었을까…'2500조원' 석유 제국의 절대 반지 [딥다이브 중동]
2) 인류 최후의 석유기업…아람코는 왜 중국과 손잡았을까 [딥다이브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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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렸나 장기투자인가…'1조 적자' 루시드를 못 버리는 이유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석달 간 순손실 7억 7천만 달러, 만들어도 차가 팔리지 않으면서 적자와 함께 순현금흐름은 1조 3천억 원이나 줄고, 그렇지 않아도 바닥이던 주가는 시장의 낮아진 눈높이마저 채우지 못하면서 지난 주 갭하락과 함께 주당 7달러선까지 주저 앉았습니다.

남은 현금은 약 4조 원. 이런 추세로 내년 말까지 버틸지 의문인 이 회사의 최대 주주는 60.7%를 보유한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 PIF(Public Investment Fund)입니다. 아라비아반도 인프라 확장과 해외 투자의 첨병이자, 왕실의 금고 역할을 하는 기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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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는 2018년 루시드가 상장하기 전부터 기금의 자금을 꺼내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고, 상장 이후 지난해까지 국부펀드 계열사인 사우디개발기금 SIDF를 통해 약 14억 달러의 차환과, 자국이 최대주주인 걸프국제은행 GIB를 통해 신용보강을 하는 등 지원을 이어왔습니다.

하지만 2030년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경제를 준비하고 있는 사우디는 미래 모빌리티인 전기차, 도심항공망의 틀을 잡아줄 기술 회사로서의 루시드를 포기할 생각은 없어보입니다. 국부펀드 연례보고서에서도 대표적인 투자로 언급되고, 미래도시 네옴(NEOM)시티의 기반을 만들 수단으로 보고 있기도 하죠.

그런데 사우디 국부펀드 PIF가 미래를 담보로 이렇게 아슬아슬한 투자를 이어가는 사례는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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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정학 갈등에도 미국 주식 못 버려…게임회사 비중 20%

지난 2022년 말 기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보고된 사우디 공공투자기금의 주식 거래내역을 보면 모두 309억 달러의 평가가치, 우리 돈으로 41조 원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지분 60.7%를 보유해 미국 주식투자금의 4분의 1을 담고 있는 루시드 외에 한때 손정의의 비전펀드와 우버(Uber)에도 투자했죠. 참고로 손 회장이 이끄는 기술투자펀드인 비전펀드는 지난 2022회계연도 기준 우리 돈 52조 4천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해를 입은 상태입니다.

그의 조언을 받아 기술주 투자를 감행한 PIF는 최근 실적 실망감에 급락한 페이팔(Paypal)을 비롯해 액티비전블리자드(Activision Blizzard), 일렉트로닉아츠(Electronic Arts), 테이크-투 인터랙티브 소프트웨어(Take-Two Interactive Software)를 2~6% 비중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펀드 내에서 게임 기업의 비중이 20% 정도로 꽤 공격적인 포트폴리오입니다. 콘솔 게임 인기 순위 1, 2위를 오르내리는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시리즈, 피파(FIFA23), GTA, 문명 시리즈 등 대작 게임을 생산한 곳들입니다.

하나 덧붙이자면, 미국 주식 외에 사우디 공공투자기금에 편입된 기업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닌텐도입니다. 지난달 지분이 8.26%로 일본 닌텐도의 최대 해외투자기관으로 올라섰는데, 국내에도 넥슨과 엔씨소프트 등에 투자를 해왔으니 이 정도면 투자 책임자가 게임 마니아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또 지난해 상반기에는 미국 빅테크 기업인 아마존(Amazon),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 구글 지주회사인 알파벳(Alphabet), 메타플랫폼스(Metaplatforms) 등 4대 빅테크에도 각각 4천억원 이상씩 신규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경기방어주 역할을 하는 스타벅스(Starbucks), 홈디포(The Home Deopt), 코스트코(Costco) 등의 투자 비중은 소폭 늘었고, 팬데믹기간 신규로 투자했던 라이브네이션 엔터테인먼트(Live Nation Entertainment), 카니발 코퍼레이션(Carnival Corporation)은 지속해 투자 중입니다. 반면 영국의 명품 이커머스 업체인 파페치(Farfetch), 수소산업 등으로 주목받던 플러그파워(Plug power) 지분은 대량 처분한 것도 눈에 띕니다. 


이렇게 사우디 국부펀드가 지난해 연간으로 신규 투자한 자금은 우리 돈으로 환산해 모두 12조 원 규모로 추정됩니다. 꽤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졌지만, 미국 최대기업인 애플이 빠졌고,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도 투자 목록에서 제외됐습니다.

사우디 국부펀드에게 테슬라는 일론 머스크의 조언으로 주가가 하락하던 시기 손실은 피했지만, 최고가를 향해 달릴 때 팔지 못하는 뼈아픈 종목이기도 합니다.

사우디 국부펀드의 미국 주식투자 자산을 유형으로 나눠보면 이렇습니다. 투자금액의 43%는 기술주, 이어 엔터·게임(13%), 소비·유통(11%), 헬스케어(9%) 등으로 나뉘는데, 중후장대한 산업군과 본업인 석유 관련 기업은 일절 투자하지 않고 있습니다. 팬데믹 종식 이후의 세계 경제가 정상화될 것을 기대하면서 2년여간 여행,소비 관련 비중을 꾸준히 늘려온 점은 인정받을 부분으로 보입니다. 


● 지분 가치 회복 중이지만…옆나라 UAE는 공매도 준비

거액의 자금으로 더 장기간 투자를 하는 펀드이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제 정세와 거시 경제 변화에 타격을 입는 건 여느 투자자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기금 역시 올해 들어 지난 2월까지 자산 가격이 소폭 회복했지만, 금리인하 기대가 멀어지면서 수 조원의 자금 변동을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세계 국부펀드 자금을 추적하는 글로벌 SWF가 내놓은 추정치에 따르면 지난 2월까지 사우디 국부펀드의 보유 자산 가치는 380억달러까지 증가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루시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분 가치는 1년간 62% 상승했다는 분석도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우디 국부펀드 보유비중 약 25% 수준인 루시드의 주가는 지난 1월말 12달러에서 재차 하락을 이어가면서 펀드 수익률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런 공격적이고 아슬아슬한 투자가 지속되자 사우디 내에서도 왕세자의 행보에 대한 이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올해 1월 보도에 따르면 왕세자의 공격적인 투자성향에 국부펀드 투자위원들이 반발했던 사실도 전해졌습니다. 



 

또 하나 넘어야 할 산은 전세계적인 경기침체 신호가 부쩍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은행과 퍼스트리퍼블릭 등 지역은행 파산은 이제 기업 자금 조달까지 꺼리게 만드는 신용경색 현상을 부르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투자 거장들은 부동산 시장의 부실 가능성을 연이어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빠르게 읽은 건 2030년 이후 미래를 그리며 공격적인 베팅에 나선 사우디가 아닌 옆나라 아랍에미리트연합입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 국부펀드 ADIA는 미국 주식시장에 대한 공매도 채비에 나섰습니다. 전세계 국부펀드 가운데 중국 CIC, 노르웨이 NBIM을 잇는 3위 국부펀드 ADIA가 시장 약세를 보고 방향을 틀려하는 겁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국부펀드는 9천억 달러 규모의 아부다비 국부펀드(ADIA), 2480억 달러의 무바달라(Mubadala), 2천억달러 규모의 두바이투자청(IDC) 등 3곳을 통해 금융시장에서 사우디에 못지 않은 자금력을 행사하고 있죠. 이들 기관은 UAE가 영국에서 독립된 이후 빠르게 세계 시장에 진입한 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여건에서 ADIA의 투자결정은 다른 대형 투자기관들에게도 무시못할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시장에 일찍 눈을 뜬 중동 최대 국부펀드의 이러한 움직임은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인프라 투자와 로봇·모비리티 등 성장주 투자에 속도를 내는 사우디와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조금 더 살펴보자면, 아부다비 왕실의 금고라 할 수 있는 ADIA를 이끌고 있는 인물은 '셰이크 타눈'으로 현 대통령의 동생이자 퍼스트 아부다비 은행 회장을 겸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다른 국부펀드도 형제들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중동 부자'의 대명사가 된 '만수르(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흐얀)'가 의장으로 있는 무바달라는 운용자산 약 2천억달러 규모로 지난해에만 영국에 100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반도체 생산, 석유화학, 헬스케어, 방위산업에서 국제적인 투자파트너로 활약 중입니다.

반도체 설계기업인 글로벌파운드리스(GlobalFoundries), 캐나다 노바 케미컬(NOVA) 등의 최대주주이고, 한국과 UAE간 협력 확대에 맞춰 이달 토스,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과 클린에너지 분야 협력을 모색하는 주요 기관이기도 합니다. 


물론 사우디 국부펀드도 성장속도와 투자 프로그램에서 뒤지지 않습니다. 2021년 한해에만 유가상승과 유동성 확장에 힘입어 연간 25% 성장을 기록했고, SWF전망으로 2030년 이후 중국 CIC를 넘어 세계 최대 국부펀드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은 왕가들끼리 친분이 두터운 형제 국가이면서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경쟁 관계에 있기도 합니다. 경제 개발측면에서 보자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개발을 벤치마킹해 반도 끝자락에 네옴 시티를 건설하려는 건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죠. 또 한편으로는 광범위한 투자 목록에서 2030년, 2050년까지 석유없이 새 먹거리를 찾아야만 하는 이들 국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2023.05.13. 오전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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